INCHEON KUMDO ASSOCIATION

인천광역시 검도회

검도란 무엇인가?

소통으로 하나되는 인천검도

ㆍ검도(劍道)의 유래(由來)

검(劍)의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검은 석검(石劍)에서동검(銅劍), 철검(鐵劍)으로 진화하였다.
특히 조선 정조 14년(1790년)에간행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수록된 본국검법(本國劍法)은신라 화랑인 황창랑(黃倡郞)으로부터기원된 세계 최고의 검법(劍法)이다. 검도(劍道)란용어는 중국(中國)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처음 나타나며,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치안(治安)의 필요성 때문에경찰 교습 과목으로 실시된 것이현대 검도의 효시이다.

ㆍ검도의 정의

검도는체육경기의 한 종목이며 그 명칭이다. 칼의 역학적 원리를 응용하여겨루기를 행하며, 정해진 경기·심판규칙에의해 승패를 가르는 격투기적개인경기이다. 교예(敎藝)와경기의 구분에 따라 칼(刀·劍·木刀·竹刀)은구별하여 사용한다

ㆍ검도의 목적

검도의목적은
① 예의를 바르게한다. 예의는 인간이 지켜야 할가장 근본적이고 규범이 되는상대적 행위이다. 검도에서 예의를잃으면 오직 칼을 사용하는 투쟁만이강조될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한다.
② 심신을 건강하게 한다. 몸과 마음을건강하게 하려면 수련을 통하여힘과 기량을 기르며, 어려움을참고 이를 이겨내는 것을 보람과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
③ 신의를 지킨다. 칼은 올바른 일을위하여 쓰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활인검(活人劍)이다. 부당한 것을없애고 믿음으로 사귀며 헌신적으로사회에 봉사하는 인간이 되도록스스로 노력하고 이를 실천해야한다.

ㆍ검도의 특성

① 정신적 전통문화의 계승이다. 한국검도는 선도(仙道)에 따른상무정신(尙武精神)과 풍월도(風月道)에입각한 세속오계 등 고유의 전신세계에서비롯한 충·효·예·도·덕의전통사상을 포함한다.
② 심신의 조화이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 심기력일치(心氣力一致)의 수련과정에서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 과단성, 침착성 등 강인한 정신력과 함께전신의 고른 발달과 특히 심폐기능의강화로 지구력, 순발력, 민첩성배양에 뛰어나다.
따라서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전한 정서배양과예절교육에 큰 도움을 준다.

ㆍ검도용구 및 경기방법

검도용구에는 도복(道服), 호구(護具), 죽도(竹刀), 목검(木劍) 등이있으며, 도복은 흰색 또는 감색, 상의와 하의로 구분된다. 호구는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호면(護面),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護腕), 가슴과 몸통을 보호하는 갑(甲), 허리 아래를 두르는 갑상(甲裳)으로구분되며 반영구적으로 사용할수 있다. 죽도는 나이와 성별에따라 그 길이와 무게가 규정되어있으며(대학, 일반의 경우 길이 120cm, 무게 500g 이상), 경기장 규격은 9∼11m 길이의 정사각형이다.
검도경기는단체전(5인조, 7인조)과 개인전으로구분된다. 승부는 죽도로 상대의유효격자부위(머리, 손목, 허리, 목)를 정확하게 격자(擊刺)하면득점으로 인정되며, 제한시간(5분원칙) 내에 두판을 선취한 자가 승리한다.

ㆍ검도의단(段)

검도에입문하여 3개월이면 기본을 습득하고호구를 착용할 수 있다. 검도단은 초단(初段)에서 9단까지단위가 있으며, 하루 평균 1시간씩 1년 정도를 꾸준히 수련하면 초단에입단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유단자수는 약 10만명에 이르렀고, 여성유단자 수도 3,000명에 육박하고있다.

ㆍ세계속의 검도

현재검도는 아시아·미주·유럽등 세계 40여개국에 보급되어있으며 제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1970년 일본에서 개최된 이래매 3년마다 아시아·미주·유럽순으로 돌아가면서 개최된다. 세계적으로 국제검도연맹(I.K.F.: International Kendo Federation)이조직되어 있어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개최 및 주관, 학술연구 및 세미나개최, 검도 보급, 정보 교류 등주요 사업을 계획하고 관장한다.
우리나라는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제1회 대회부터 참가하여 88년(제7회한국), 91년(제8회 캐나다), 94년(제9회프랑스), 97년(제10회 일본) 대회에서 4연속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하는등 단체전·개인전에서꾸준히 입상하여 검도 강국으로성장하여 왔다.
또 지난 2000년 3월에 미국 산타클라라에서제1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우리 나라는 개인전에서 홍성수(부천시청) 선수가 개인전 3위에, 그리고단체전에서는 결승에서 일본에게아깝게 연전패해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ㆍ사회체육으로서의 검도

오늘날여가 시간의 증가, 삶의 질적인향상, 그리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인식으로 인해 스포츠를 스트레스해소, 정신단련 등 개인적인 만족을얻기 위한 수단 등으로 인식하게되었다.
최근생활체육으로 각광을 받게된 검도도이런 측면에서 생활체육으로 큰각광을 받게 되었다. 검도가 원래는격렬한 운동이지만 보호장비가확실하여 부상의 위험이 적고각자의 힘에 맞게 운동 강도를조절할 수 있어서 어린아이부터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길수 있다는 점이 생활체육인들에게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우리나라에는 약 60만의 검도인구가 각 도장 및 사회센타, 동우회 모임 등에서 활동하고있다. 본회에 등록된 단체팀만도 400여개 팀이 넘는다. 또한 전국적으로약 400여개의 사설도장에서 검도를가르치고 있다. 각 도장에는 검도입문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있어 한국 검도의 앞날을 밝게하고있다.

ㆍ검도의 이념

검도는칼을 사용해온 유구한 투쟁의역사 속에서 인류가 터득한 순치(馴致)된경험들을 무덕(武德)으로 승화시키려고노력하는 선지향적(善指向的) 의지이며, 교예ㆍ경기적(較藝ㆍ競技的) 수단을 동반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한 도(道) 이다.

ㆍ검도의 역사

신라에서크게 일어난 검술은 고려 시대까지영향을 미처발전해 내려오다가조선조에 이르러 숭문천무 사상이팽배해 지면서 쇠퇴기를 맞이하게되었다. 반면, 우리나라로부터검술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은그 동안 이를 계승, 발전시켜오히려 검의 문화를 꽃 피우게되었다.
조선조중기까지 천대를 받아오던 검술은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그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었다.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 무예 중 본국검이 포함되어군사훈련 과목으로 채택되었음이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뒤 고종 때인 1896년 경무청에서치안의 필요성에 의해 경찰 교육의한 과목으로 격검(擊劍=검술)이채택되었고, 1904년 육군연성학교에서도교과목에 격검을 포함시켰다.
1908년에는한국과 일본 간 최초로 경찰관격검대회가 열렸다. 한일 간에검술이 교류하고 있음을 알 수있는 것이다.
같은해 9월, 무도기계체육부(武徒機械體育部)라는단체가 생겨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최초의 사회체육을 시도하였는데, 여기에도 격검이 한 종목으로들어 있었다.
이때는이미 격검의 장비 및 연무 방식이현대 검도와유사하게 개발되어있었다.
1910년경격검이라는 용어는 '검도(劍道)'라는새로운 용어로 바뀌었다. 전투용에서무도(武道)성격이 강한 스포츠로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검도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1906년에는사립 오성학교 등에서 검도를가르쳤고, 1920년 조선체육회가발족된후 1921년에는 우리나라최초로 사설검도관이 생겨났으니, 강낙원 선생이 창립한 조선무도관이바로 그것이다.
1927년에는중학교 교과목으로 정식 채택되어지도함으로써 검도는 한층 활기를띠게 되었고, 1935년 제 16회전조선체육대회(현재의 전국체육대회전신)부터 역시 검도가 정식 종목으로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일제 강압에 의해 1938년 조선체육회는해산되었다.